출처: http://blog.naver.com/uvz/40092787715  내 '입장'이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란 아무래도 경험이나 기호 그리고 처한 입장 등에 따라 좌우되기 쉽다. 예를 들면 비슷한 지적 수준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국인 가운데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될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하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흡연자냐 아니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실제로 행해진 이 실험에서 흡연자들은 높은 숫자를 답하였고 비흡연자들은 낮은 숫자를 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추론 패턴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간단히 변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와다 히데끼, 이규영 옮김,『5대 핵심능력으로 나를 리모델링하라』, 글담, 2001, 37~38쪽)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입장’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 입장은 ‘경험이나 기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담배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흡연자(즉, 니코틴 중독자)의 생각이다. 흡연자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흡연자에게 담배는 단순히 기호식품이 아니라 정서적인 어떤 것이다. 그래서 흡연자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을 일컬어 그들은 ‘삭막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흡연자가 줄고 비흡연자가 느는 현상이 사회가 삭막해지는 것과 무슨 관계일까? 같은 기호식품이자 중독물질인 ‘콜라’를 ‘담배’의 자리에 대신 넣어 보라. 콜라를 마시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회가 삭막해지고 있다는 지표인가? 흡연자들 중의 상당수도 콜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이다. 그들이 콜라가 사라지는 걸 서운하게 생각할 것 같진 않다. 사회의 천덕꾸러기로 밀려 나고 있는 콜라의 입지에 대한 어느 콜라 중독자의 푸념을 듣는다면 그들도 분명히 어이없어 실소를 터뜨릴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끄집어낼 수 있다. 첫째, 어떠한 판단을 하기 전에 자신의 입장에 대해 먼저 인식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입장이 생각하는 것이므로. 달리 말해 내 입장이 바뀌면 판단도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을 판단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 대해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입장이 생각하는 것이므로. 예컨대 담배 중독자인 당신은 콜라 중독자인 그의 입장도 진지하게 들어줘야 한다. 중독된 대상이 콜라라고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담배에 강한 정서적인 집착을 느낀다면, 그도 콜라에 대해 똑같은 심정이란 걸 헤아려야 한다.


  “인간의 추론 패턴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간단히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고력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줄일 수 있다. 술이나 담배에 정서를 한껏 담아서 미화하고 포장하는 일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혼자서 속으로 하면서 즐기면 된다. 괜히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일 만한 일은 아니다. 예컨대 “술도 못 마시는 놈이 어떻게 인생을 알겠는가?” 따위의 얘기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넙죽넙죽 내뱉는 인간은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런 인간일수록 “콜라에 밥을 말아서 먹어 본 적 없는 놈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크게 웃는다.


  ‘재밌는 인간’과 ‘우스운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는 남들이 자신의 무엇을 보고 웃는지 뚜렷이 알고 있지만, 후자는 남들이 자신의 무엇을 보고 웃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을 훤히 파악해야 ‘재밌는 인간’이 될 수 있다. 내 입장에선 재밌는 얘기랍시고 해도, 상대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떠들면 자칫 ‘우스운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설령 ‘재밌는 인간’은 못 되더라도 ‘우스운 인간’은 되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킬러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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